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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EST/여행

부여 여행, 백제역사유적지구 4군데

by 미니토이 2024. 12. 10.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한 백제는 한강을 통해 바다로 나가 주변국과 직접 교류를 통해 외래 문물을 접함으로써 선진문화를 빨리 들여올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련되고 아름다운 문화를 발전시켰으나 영원할 것 같았던 백제의 전성기는 세 차례의 천도에도 불구하고 660년에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게 되었음.

 

백제는 우아하고 세련된 석탑에서부터 화려하고 정교한 금속공예, 간결하고 실용적인 토기와 기와에 이르는 고도의 문화를 갖고 있었고, 옛 수도였던 공주, 부여, 익산에 남은 흔적들을 통해 백제의 수준 높은 문화를 보여주고 있음.

 

이중 부여에서 백제의 숨결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 4곳을 가볼 예정.

 

 

부여 나성 : 수도 보호를 위한 외곽 방어시설

평양에 있는 나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나성 중 하나이다.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긴 538년경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금강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벽 역할을 했기 때문에 부소산성에서부터 도시의 북쪽과 동쪽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수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성곽은 지형에 따라 축성 방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흙을 다져 쌓아올린 형태로 지어졌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봉수 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고, 성안에 왕궁, 관청, 민가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위치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87번길 1
  • 시간 : 연중무휴

https://www.buyeo.go.kr/html/heritage/sub2/sub2_0204.html

 

나성 > 백제역사유적지구 > 부여군 세계유산

한반도 고대 삼국 중 최초로 축조된 나성은 중요한 외곽방어시설로 백제의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8km의 성이다. 도시의 북단에 위치한 부소산성에서 시작하여 도시의 북쪽과 동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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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 -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

부소산을 둘러쌓은 사비시대의 도성이다. 『삼국사기』에는 ‘사비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이곳은 538년(성왕 16년)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뒤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이자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군창 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했고, 평상시에는 왕과 귀족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던 장소로 사용된 듯하다.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백화정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선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의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정자 바로 아래, 즉,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에 있는 바위가 낙화암이다. 백제 의자왕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궁녀들은 이곳으로 몰려와 치마를 뒤집어쓰고 물로 뛰어내렸다. 『삼국유사』에는 ‘타사암’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훗날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으로 고쳐 불렀다. 낙화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고란사가 있다. 사찰 뒤쪽 벼랑에 희귀한 고란초가 자라 고란사라 불리게 되었는데, 바위 사이로 흐르는 약수가 특히 유명하다. 고란약수로 불리는 이 물은 한번 마실 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위치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부소산성
  • 시간 : 3~10월은 09~18시, 11~2월은 09~17시
  • 관람료 : 성인 2천원, 청소년 1,100원, 어린이 1천원

https://www.buyeo.go.kr/html/heritage/sub2/sub2_0201.html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 백제역사유적지구 > 부여군 세계유산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기(538~660) 왕궁 유적으로 부여 시가지의 북편에 위치한다. 시가지를 휘감아 도는 백마강을 굽어 보는 위치에 표고106m인 부소산이 솟아 있다. 이 산의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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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왕릉원

부여 능산리산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 무덤들이다. 무덤은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뒤쪽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 전부터 왕릉으로 알려져 왔던 곳으로 일제시대에 1~6호 무덤까지 조사되어 내부구조가 자세히 밝혀졌고, 7호 무덤은 1971년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내부구조와 재료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호 무덤(동하총)은 네모형의 널방과 널길로 이루어진 단실무덤으로 널길은 비교적 길고 밖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나팔형이다. 널방의 네 벽과 천장에는 각각 사신도와 연꽃무늬, 그리고 구름무늬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2호 무덤(중하총)은 무령왕릉과 같이 천장이 터널식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3호 무덤(서하총)·4호 무덤(서상총)은 천장을 반쯤 뉘어 비스듬히 만든 후 판석을 덮은 평사천장이고 짧은 널길을 가졌다. 이 형식은 부여지방에 많으며 최후까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능산리 무덤들은 일찍이 도굴되어 두개골 파편·도칠목관편·금동투조식금구·금동화형좌금구 등 약간의 유물만 수습되었다. 무덤들 서쪽에서는 절터가 발굴되어 백제금동대향로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능산리 무덤들이 왕실 무덤지역라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 위치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87번길 1
  • 시간 : 3~10월은 09~18시, 11~2월은 09~17시
  • 관람료 : 성인 1천원, 청소년 6백원, 어린이 4백원

https://www.buyeo.go.kr/html/heritage/sub2/sub2_0203.html

 

부여왕릉원 > 백제역사유적지구 > 부여군 세계유산

부여왕릉원은 사비도성 바로 밖의 동서로 이어지는 해발 121m의 능산 남사면 산록에 모두 7기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위치한다. 고분들은 사비시대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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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에서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라는 글이 발견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즉 고려시대에 백제사찰의 강당위에 다시 건물을 짓고 대장전이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림사의 주요 건물 배치는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에 이르는 중심축선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건물을 복도로 감싸고 있는 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 가람 중심부를 둘러싼 복도의 형태가 정사각형이 아닌, 북쪽의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으로 되어있다.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중문 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1993년에 지어졌다. 백제 때에 세워진 5층석탑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남아 있다. 출토유물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장식기와를 비롯하여 백제 벼루, 토기와 흙으로 빚은 불상들이 있다.

 

  • 위치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정림사지
  • 시간 : 3~10월은 09~18시, 11~2월은 09~17시 (박물관은 월요일 휴관)
  • 입장료 : 무료

https://www.buyeo.go.kr/html/heritage/sub2/sub2_0202.html

 

정림사지 > 백제역사유적지구 > 부여군 세계유산

정림사지는 부여의 중심부에 위치한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절터이며, 주변에는 동쪽으로 금성산, 북쪽으로 부소산에 둘러싸여 있다. 사비시대 수도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정림사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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